부모나 조부모가 나이가 들면서 가족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인지기능 저하다. 문제는 최근 금융 사기 수법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적인 사기범들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가족이나 유명인의 목소리와 얼굴까지 복제하면서 판단력이 떨어진 고령층을 노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평소 돈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이 갑자기 청구서를 잊거나 같은 돈을 두 번 내는 등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생활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가 인지 기능 저하를 알리는 초기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캐나다 65세 이상 치매 환자 약 48만 7000명

 

캐나다 공중보건청(PHAC)에 따르면 가장 최근 전국 통계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65세 이상 캐나다인은 약 48만 7000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새롭게 치매 진단을 받은 사람도 약 9만9000명으로, 시간당 11명 이상이 새로 진단을 받은 셈이다.

고령층의 인지 기능 저하는 금융사기 위험과도 직결된다. 캐나다 사기방지센터(CAFC)에 따르면 2025년 접수된 사기 신고는 11만 2000건을 넘었고 신고된 피해액만 7억 400만 달러를 웃돌았다. 피해액 기준으로는 투자 사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사기 수법에 노출될 경우 피해 규모가 순식간에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가족들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표적인 5가지 금융생활 변화다.

 

1. 청구서를 잊거나 같은 돈을 두 번 낸다

 

가장 먼저 눈여겨볼 부분은 청구서 관리다. 수십 년 동안 각종 공과금을 제때 납부하던 사람이 갑자기 전기요금을 연체해 벌금을 내거나, 부엌 한쪽에 개봉하지 않은 청구서가 쌓이기 시작한다면 변화의 신호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납부한 청구서를 다시 내거나 자동이체가 설정돼 있는데도 같은 회사에 수표를 보내는 식이다.

물론 한두 차례 청구서를 잊었다고 해서 인지 기능 저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평생 돈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에게 이전에는 없던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여부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부모가 스스로 금융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정기적인 청구서를 자동이체로 전환해 두는 것이다.

 

2. 이유 없는 거액 인출과 갑자기 등장한 ‘새 친구’

 

뚜렷한 이유 없이 큰돈을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상품권을 반복적으로 구입하고, 가족이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기 시작하는 것도 경고 신호가 될 수 있다.

특히 평생 돈을 아껴 쓰던 부모가 갑자기 새로 알게 된 친구나 공사업자, 전화로 알게 된 사람을 경제적으로 ‘도와주기’를 시작한다면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온타리오의 한 고령자는 AI로 제작된 총리의 딥페이크 영상을 이용해 홍보한 가짜 암호화폐 투자 플랫폼에 속아 90만달러가 넘는 돈을 잃었다고 CTV뉴스가 지난 6월 보도했다. 당시 사기범들은 수개월에 걸쳐 피해자의 신뢰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지 기능과 판단력이 떨어지면 이런 신뢰 조작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이상한 금융거래를 발견했더라도 처음부터 부모를 비난하거나 추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함께 은행 거래 내역을 살펴보자고 제안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피해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면 이를 가족에게 숨길 가능성이 커지고, 처음에는 2000달러였던 피해가 나중에는 20만 달러로 불어날 수도 있다.

 

3. 예전 같으면 끊었을 투자·은행 권유 전화에 응한다

 

과거라면 바로 전화를 끊었을 부모가 갑자기 ‘은행 사기 담당 부서’라는 사람의 전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처음 들어보는 투자회사의 권유에 관심을 보인다면 판단력 변화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 금융당국도 고령자와 취약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캐나다 증권관리자협회(CSA)는 2021년부터 투자회사들이 고객에게 ‘신뢰할 수 있는 연락처(Trusted Contact Person)’를 지정하도록 요청했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금융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경우 특정 거래를 일시적으로 보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모의 투자계좌에 신뢰할 수 있는 연락처가 등록돼 있는지 확인하고, 은행 계좌에는 주요 거래가 발생할 때 알림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지 기능 저하가 실제 진단으로 이어졌다면 세금 혜택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연방 장애인 세액공제(Disability Tax Credit·DTC)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의사의 확인과 캐나다 국세청(CRA)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단만으로 자동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가운데 실제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면 Canada Caregiver Amount 등 관련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4. 수십 년 사용한 은행·투자 계좌를 갑자기 헷갈린다

 

PIN 번호를 한 번 잊어버리는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RRIF가 어느 금융기관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은행 지점에 반복적으로 전화하고, 은행에 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직불카드와 PIN 번호를 건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때 가족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성인 자녀와 부모 명의의 공동 계좌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 정부 역시 고령층 금융착취 예방 안내를 통해 공동계좌에서는 다른 명의자가 상대방의 허락 없이 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상속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부모가 사망한 뒤 공동계좌의 생존 명의자가 해당 자금이 자신에게 증여된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형제자매 사이의 상속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자녀를 공동 계좌 명의자로 추가하기보다는 명확한 지침을 담은 적절한 위임장(Power of Attorney)을 미리 작성하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다. 필요한 사람이 금융 업무를 대신 처리할 수 있으면서 공동 계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5. 유언장·수익자·위임장을 갑자기 바꾼다

 

부모가 새로 알게 된 사람과 한 차례 식사한 뒤 갑자기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거나, RRSP 수익자를 간병인으로 변경하고, 가족 누구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위임장에 서명했다면 즉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언장이나 위임장 등 중요한 법률 문서에 서명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있었는지는 법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이후 가족이 서명의 유효성에 이의를 제기하면 상속재산 전체가 법정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위임장은 인지능력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전에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충분한 판단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자신의 의사에 따라 위임장을 작성하고, 가족들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장소에 사본을 보관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절한 위임장이 없다면 가족이 대신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법원의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절차는 주마다 다르다.

 

작은 금융 실수가 반복된다면 ‘변화’에 주목해야

 

이 같은 행동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인지 기능 저하나 치매를 판단할 수는 없다. 힘든 시기를 겪거나 가까운 사람과 사별한 뒤 일시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복용하는 약이 바뀌면서 비슷한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실수보다 과거와 달라진 행동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돈 관리 방식은 오랜 기간 형성된 습관이어서 인지 기능의 변화가 비교적 일찍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이다. 동시에 가족이 사전에 보호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부모의 금융생활에서 이상한 변화가 발견됐다면 비난하기보다 이유를 차분히 확인하고 함께 계좌와 청구서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자동이체와 거래 알림, 신뢰할 수 있는 연락처 지정, 적절한 위임장 작성 등 필요한 안전장치도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충분할 때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