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플라스틱 원가, 다음 인플레이션 뇌관 되나
미국 플라스틱 공급업체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더 이상 자체적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하면서 식료품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비재 가격이 올해 하반기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플라스틱 수지와 관련 원재료의 도매가격 지수는 지난달 14% 급등하며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란 전쟁 여파로 핵심 원료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코리(Corry)에 본사를 둔 플라스틱 부품 제조업체 바이킹 플라스틱스(Viking Plastics)의 최고경영자(CEO) 숀 그로스는 자동차와 난방 시스템에 사용되는 성형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현재 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로스 CEO는 고객사에 대한 가격 인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시장이 체감하지 못한 실질적인 영향이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 여파, 소비자 가격으로 전이
플라스틱은 과자 포장재부터 냉장고 부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전반에 사용된다.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약 98%는 화석연료를 원료로 한다.
현재 소비자들이 전쟁에 따른 석유화학 제품 가격 상승을 아직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가 상승분이 공급망을 따라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로스 CEO는 원재료 공급업체로 다우(Dow)를, 고객사로 포드(Ford)를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바이킹 플라스틱스가 사용하는 일부 폴리에틸렌 원재료 가격은 올해 들어 40% 이상 상승했다.
최근 수요 둔화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고점에서 다소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공급망 전반에 상당한 비용 부담이 누적됐다고 보고 있다.
다우를 비롯한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은 이미 플라스틱 수지를 포장재와 각종 제품으로 가공하는 기업들에 가격 인상을 적용했다. 이러한 비용은 공급망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전가돼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로스 CEO는 비용 부담이 결국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연결될 것이라며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아시아 이어 미국도 공급 부족 압박
플라스틱 원료 부족 현상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먼저 나타났다. 이들 지역의 제조업체들은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에 사용되는 나프타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한 과자 제조업체는 나프타 기반 잉크 원료 부족으로 일부 제품 포장을 일시적으로 흑백 디자인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에서 추출한 에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 공장이 많아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에탄은 나프타보다 저렴하고 중동 분쟁의 영향도 덜 받았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와 유럽 구매자들이 미국산 원료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 미국 내에서도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재고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용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다.
텍사스주 설퍼스프링스에 본사를 둔 소비재 포장업체 D6의 창업자 에드워드 도미니언은 원재료 비용이 운송비와 연료비 상승과 함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사 역시 고객사에 비용 전가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부 구매자들은 필요한 플라스틱 수지의 약 70%만 공급받고 있으며, 특정 원재료의 납기는 기존 1개월에서 최대 3개월로 늘어났다.
도미니언은 농산물, 제과류, 육류, 치즈 등 신선식품 포장재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난이 지속될 경우 이르면 8~9월부터 매장 진열대에서 일부 상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소비자가 매장에서 제품을 사려고 했는데 물건이 없을 때 비로소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도 잇따라 경고
여러 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플라스틱 원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주택개선용품 판매업체 로우스(Lowe’s)는 지난 5월 실적 발표에서 수지 등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공급업체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관련 부담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세탁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월풀(Whirlpool)의 마크 비처 CEO 역시 하반기 수지 가격 상승이 원재료 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외식업체 카바 그룹(Cava Group)은 연료 할증료와 전기요금, 식품 및 포장재용 폴리에틸렌 비용 상승 등을 반영해 올해 실적 전망치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코스트코(Costco) 역시 석유 기반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공급망 전반에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게리 밀러칩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수지 가격 상승이 제품 원가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비식품 부문을 중심으로 추가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특히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플라스틱 부품이나 폴리에스터, 면 소재가 포함된 제품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부담, 정치권에도 악재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연료비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2022년 고물가 충격 이후 가계 저축 여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상승하며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플라스틱 가격 충격이 소비자 단계까지 본격적으로 확산될 경우 올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로스 CEO는 최근 지역 식당에서 지역구 공화당 하원의원을 만나 이러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공화당의 중간선거 성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기업 경영에도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지속적인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